밀라노-코르티나 겨울올림픽 빙판 위에서는 수많은 빙속 스타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교차하고 있다. 이미 뜨거운 환희를 맛본 선수들이 있다. 올림픽 무대에서만 무려 합작 6개의 메달을 쓸어 담은 캐나다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이바니 블롱댕과 코트니 사로다. 최근 이들은 CBC 방송의 켈다 유엔과 마주 앉아 올림픽에서 겪은 생생한 여정을 털어놓았다. ‘메달 투어’에 나서 어린 팬들과 직접 교감하며 갓 따낸 반짝이는 메달을 자랑스럽게 선보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벅찬 결실의 무대가 되었지만, 그 열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일생일대의 승부를 앞두고 숨을 고르는 이들도 있다. 바로 빙속 강국을 자부하는 한국 여자 단거리 대표팀이다.

거침없는 질주를 준비하는 한국의 신성 이나현

“후회 없이 즐기고 돌아오겠다.” 다음 달 2일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인 한국체대 소속 기대주 이나현(21)이 올림픽을 앞두고 밝힌 당찬 각오다. 그의 이름은 이미 세계 무대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024년 500m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빙속계의 샛별로 떠오른 그는, 지난해 하얼빈 겨울아시안게임 100m와 팀 스프린트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25~2026 월드컵 1차 대회 당시 37초03의 기록으로 사상 첫 동메달을 수확하며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 올림픽 출전권을 결정짓는 1~4차 월드컵 순위에서 당당히 4위를 꿰찼고, 기록상으로도 시즌 톱5에 드는 놀라운 성적이다. 주 종목이 아닌 월드컵 1000m에서도 개인 최고 기록을 고쳐 썼을 만큼 상승 곡선이 매우 가파르다. 1m70cm의 탄탄한 체격에 폭발적인 순간 가속력을 장착한 데다, 대학 입학 후 약점으로 꼽히던 스타트와 후반 경기 운영 능력까지 눈에 띄게 끌어올렸다.

0.01초를 다투는 치열한 생존 경쟁

물론 올림픽이라는 꿈의 무대에서 마주해야 할 적수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당장 시즌 랭킹 1위인 네덜란드의 펨케 콕(25)이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 그는 월드컵 1차 대회에서 36초09라는 경이로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추격자들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여기에 36초88의 기록으로 36초대에 진입한 일본의 신흥 강자 요시다 유키노(23) 역시 위협적이다. 이나현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펨케 콕과 요시다를 콕 집어 언급하며 이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전하는 동시에, 이 치열한 경쟁에서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졌다. 경계해야 할 대상은 더 있다. 밀라노에서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2022 베이징올림픽 챔피언 미국의 에린 잭슨(33) 또한 올 시즌 월드컵에서 36초57을 기록하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관록과 패기의 시너지, 37초대 벽을 향한 담대한 도전

이 숨 막히는 전쟁터에서 이나현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는 베테랑 김민선(27·의정부시청)이다. 일찍이 이상화의 뒤를 이어 주니어 신기록을 썼던 그는 2018 평창 대회부터 무려 3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은 산증인이다. 지난해 말 월드컵 4차 대회에서 37초83으로 동메달을 따냈고, 콕이 작성한 기록과는 다소 격차가 있지만 개인 최고 기록이 36초96에 달할 만큼 36초대 진입의 저력을 깊숙이 품고 있다. “올림픽 기간에는 100%가 아닌 120%의 몸 상태를 만들겠다.” 취재진 앞에서 밝힌 김민선의 결의는 단호했다. 월드컵 4차 대회 이후 국내외에서 막바지 훈련에 한창인 이나현의 리듬감도 최고조에 달해 있다. 이달 열린 동계체전 대학부 500m와 1000m를 단숨에 석권한 그의 500m 기록은 일반부에 나선 김민선을 앞설 정도였다. 한국 선수단은 쇼트트랙 금맥에 더해 남녀 총 14개의 금메달이 걸린 빙속에서 베이징 대회(쇼트트랙 2개)를 뛰어넘는 3개 이상의 메달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지난 베이징 대회 당시 여자 빙속에서 단 한 명의 입상자도 나오지 않았던 아쉬움을 이번 기회에 털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당찬 새내기 이나현과 관록의 김민선. 이들이 경기 당일의 컨디션과 빙질이라는 미세한 변수들을 이겨내고 한국 시각으로 2월 16일 오전 1시 3분에 펼쳐지는 여자 500m 경기에서 마의 37초대 벽을 시원하게 뚫어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